이런 학생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얼마 전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을 다시 보았습니다.

유명한 연설이지요.

대학을 중퇴했던 이야기, 별 생각 없이 들었던 캘리그래피 수업 이야기,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던 이야기, 그리고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던 이야기까지.

그리고 연설의 마지막에 이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직역하면 조금 낯섭니다.
‘계속 배고파하라. 계속 어리석어라.’ 정도의 말이니까요.

하지만 잡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지금 가진 것에 쉽게 만족하지 말고 계속 무언가를 갈망하며, 세상이 정해 놓은 답만 따라가기보다 때로는 바보처럼 보이더라도 자기 마음이 이끄는 길을 가보라는 뜻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조금 다른 곳에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마지막 이 한마디를 듣고 나니, 앞에서 들었던 평범한 이야기들이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그만둔 것도, 캘리그래피를 배운 것도, 회사에서 쫓겨난 것도 그 일이 일어났을 때는 그저 한 사람의 삶에서 벌어진 일들이었을 겁니다.

잡스 자신도 그때는 그것들이 나중에 무엇이 될지 몰랐겠지요.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니 그 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나의 점처럼 흩어져 있던 일들이 나중에는 선으로 이어지고, 그 선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문득 우리 아이들의 공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시도 배우고 소설도 읽습니다.
문법도 배우고 어려운 독서 지문도 읽습니다.
문제를 풀고, 틀리고, 다시 풀고, 시험을 봅니다.

저도 오랫동안 국어를 가르치면서 참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배운 것들이 이 아이에게 나중에 무엇으로 남을까?

시험이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이 있을까?

지금 읽은 이 한 편의 글이, 지금 나눈 이 한 번의 이야기가 이 아이가 살아가면서 언젠가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저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공부하면서 만나는 하나하나의 지식은 어쩌면 작은 점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점 하나만 놓고 보면 별 의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늘 배운 것이 예전에 배운 것과 연결되고,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자신의 경험과 연결되고,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가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 이게 그 이야기였구나.”

“아, 이것과 저것이 연결되는구나.”

저는 아이들에게 그런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공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점을 찍었느냐보다 그 점들을 스스로 연결해 볼 수 있느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배움은 점을 만드는 일이고,
생각은 그 점들을 연결하는 일이라고.


국어 공부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고 문제의 정답을 찾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만 더 가보았으면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왜 이 사람은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 글이 쓰인 상황을 알고 나면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한 걸음 더 가서,

“전에 읽었던 것과 비슷한 것은 없을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나는 어떻게 생각하지?”

이런 질문도 해보았으면 합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글자만 읽는 일이 아니라 그 글 뒤에 있는 세상까지 함께 읽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우당의 "MEDi 국어"에서는 이 과정을

텍스트(Text) → 맥락(Context) → 연결(Connection) → 의미(Meaning)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글, 텍스트(Text)를 제대로 읽습니다.

그리고 그 글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 그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 맥락(Context)을 생각해 봅니다.

그다음에는 내가 알고 있는 다른 것들과 연결(Connection)해 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글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누가 알려준 의미가 아니라,

“아,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기 생각이 생깁니다.

저는 그것을 의미(Meaning)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그 글은 아이에게 정말 자기 것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AI에게 물으면 참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저도 사용해 보면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다른 걱정을 하게 됩니다.

답을 너무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생각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답을 아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그 답이 맞는지 생각해 보고,
왜 그런지 물어보고,
내가 알고 있는 다른 것과 연결해 보고,
그래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육우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그런 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아는 아이도 좋지만 궁금해하는 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정답을 빨리 찾는 것도 좋지만 “왜?”라고 한 번 더 묻는 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생각을 말할 때

“그냥요.”

라고 끝내기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다른 생각을 들었을 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하며 자기 생각을 다시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지금 배우는 것 가운데 무엇이 나중에 정말 필요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은 시험이 끝나면 잊어버릴 것이고, 어떤 것은 한참 동안 다시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질문을 만나고, 자기 생각을 말해 보는 경험은 계속 쌓아 주고 싶습니다.

당장은 어디에 쓰일지 모르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조금 더 자라고, 세상을 조금 더 살아본 어느 날,

예전에 읽었던 글 하나가 문득 떠오르고,

선생님과 나누었던 질문 하나가 생각나고,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어느 순간 서로 연결되면서

“아, 그래서 그때 그걸 배웠구나.”

하는 순간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한참 뒤에야 자신의 삶에 흩어져 있던 점들이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육우당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국어를 잘 하는 아이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다른 과목도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시험도 잘 보고 좋은 내신으로 원하는 대학에도 척척 합격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오래 남는 것이 있었으면 합니다.

읽을 줄 알고,
질문할 줄 알고,
생각할 줄 알고,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언젠가는 자신의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도 자기만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품고 있는 바람이고,

육우당이 "MEDi 국어"를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움은 점을 만들고,
생각은 점을 연결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점들이 이어져 자기만의 그림이 되는 순간,

배움은 아이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글을 쓰게 한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입니다.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 원문 — Stanford University